희극지왕 (King of Comedy,1999)

비극적인 삶을 이야기하는 희극지왕

희극지왕은 주성치의 자전적인 알려져있는 영화입니다. 늘 신인 여배우를 발굴해 톱스타의 반열에 올려놨던 주성치 답게, 장백지도 신인 시절 이 영화를 통해 꽤 인기를 얻게 됩니다. 뻔뻔스럽게도 연인관계였던 막문위를 등장시켜 삼각관계를 연출하는 그의 살신성인 개그정신은 이 영화에서도 빛이 바라질 않습니다.

연기자의 꿈과 현실

무척이나 한적한 어느 해변가 마을에서 배우의 꿈을 키우고 있는 3류 엑스트라의 이야기입니다. 극중 주성치는 훌륭한 연기자가 되기 위한 꿈을 갖고 언제나 스타니슬라브스키의 연기론을 끼고 삽니다.

희극지왕
언제나 스타니슬라브스키의 연기론을 기반으로 연기에 대해 고민합니다

그러나 의욕이 너무 앞선 탓에 과하게 몰입한 나머지 현장의 현실을 무시한 일들이 벌어집니다. 결국 그의 연기인생은 현실과의 괴리를 느끼게 되며 순탄하지 못합니다. 그나마 마을회관을 관리하는 일이라도 없었더라면 굶어죽기 딱 좋은 현실이죠. 그래도 굴하지 않고 계속해서 연기를 하기 위해서 무던히도 애를 씁니다.

희극지왕
방 한 켠 벽에는 온통 그가 존경하고, 좋아하는 배우들의 사진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어떻게든 생계를 꾸려가야했지만 더 이상 촬영장에서 엑스트라 조차로도 써주질 않는 상황이 됩니다. 굴곡진 인생의 가시밭길 속에서도 연기에 대한 의욕은 좀처럼 꺾질 못합니다. 스스로 연극을 기획해 마을 사람들을 대상으로 홍보를 해봐도 좀처럼 그의 연기를 보고 싶어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도와주는 사람도 없고,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도 없습니다.

희극지왕
그의 작품에는 아무도 관심 갖지도 않고, 찾아주지도 않습니다.

인간 이하의 취급을 하며 그의 꿈을 짓밟고 그를 멸시하던 말들만 귓가에 맴돌뿐이었습니다. 그렇게 좌절의 나날을 보내던 그에게 우연히 연기를 가르쳐달라는 사람이 나타납니다. 다소 황당하게도 그녀의 직업은 술집 호스티스. 첫사랑을 연기해서 손님들을 끌어야하는 그녀는 매우 거칠고 걸걸합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손님의 관심을 받는 첫사랑 소녀의 이미지로 덧칠할까에만 집중하고 있습니다.

희극지왕
청순한 외모와 다르게 입도 걸고 세상에 닳고 닳은 술집 아가씨입니다.

그녀의 제안을 덥썩 받아들이고 연기를 가르치던 그에게 묘한 감정이 싹틉니다. 그래도 설마 그녀가 하찮은 자신을 좋아할까 싶은 마음에 불안하기만 합니다. 진심인지 거짓인지 모를 그의 고민은 깊어져만 갑니다.

희극지왕
용기내어 고백해도 돌아오는 답변은 “당신 앞가림이나 잘해요 등신”

그렇게 하찮던 그의 인생에도 기회가 옵니다. 톱스타의 영화에 마침 비어있던 자리에 캐스팅될 기회가 오죠. 예상치 못하게 인생이 순조롭게 흘러가기 시작합니다. 상대 배역의 톱스타와 묘한 감정의 기류가 흐르기까지 하니 이렇게 인생이 잘 풀려도 좋은가 싶을 정도입니다. 그러던 그를 떠나갔던 술집에서 일을 하는 그녀가 다시 찾아옵니다.

희극지왕
그가 잃었던 것을 가지고 그녀가 다시 찾아옵니다.

비극지왕인가 희극지왕인가

영화는 비극적일 정도로 인생의 쓰디쓴 모습들을 나열해갑니다. 주성치 특유의 유머 감각이 곳곳에 드러나지만, 이 영화를 마냥 코미디로만 분류하기에는 다소 씁쓸한 감정마저 느껴질 정도입니다. 제목은 희극지왕이지만, 주성치의 자전적인 내용을 다루었다는 내용은 비극지왕에 가깝습니다.

화려한 스타로서의 삶이냐, 험난하더라도 자신이 사랑하는 삶을 살 것이냐의 기로에서 순진하게도, 자신의 삶을 선택합니다. 이미 잘 풀리기 시작했으니 앞으로도 잘 풀릴거라는 기대를 품고.

희극지왕은 꽤 시간이 흐른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의 제가 느끼는 현실과도 묘하게 비슷하다는 느낌을 줍니다. 순탄치 못한 삶임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자신의 꿈을 쫓는 주인공으로부터 묘한 동질감과 위로마저 느낍니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희극지왕을 보고 마냥 웃을 수 없었던 이유는 그만큼 영화 속 이야기가 가깝게 느껴졌던 모양입니다. 루저의 정서를 배꼽잡고 웃게 만들정도로 잘 표현해왔던 주성치였지만, 희극지왕만큼은 웃음끼를 상당히 많이 빼고 무게를 잡았던 영화라 더욱 기억에 남았던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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