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드크로키 Nude Croquis / 2017.02.25 – 인사동 홍익민화실

누드크로키

누드 크로키

난생 처음 누드 크로키 라는 것을 해봤습니다. 누드 크로키의 목적은 빠른 시간 안에 특징을 잡아 동세와 형태를 표현하는 것입니다. 주어진 시간이 여유롭다면 그 이상의 것도 빠르게 시도해볼 수도 있겠죠. 아무튼 일반적인 상황에서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타인의  나신(裸身)을 바라본다는 것은 다소 편안한 상황은 아닙니다. 통상적인 인간 관계에서 – 그것도 초면에 – 흔히 허락되지 않는 특별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드라는 것을 공부하는 이유는 옷을 입은 사람을 그리더라도 그 옷 안의 형태를 파악해야 자연스러운 표현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여튼 누드크로키를 처음 참가해서 모델을 마주하니, 사진을 보거나 토르소 석고상을 보고 그릴때와는 또 다른 긴장감이 흘렀습니다.

근데 희한하게도 제 자신이 그렇게 행동했다는 것이 좀 의외였습니다만, 곧 아무렇지 않게 형태와 동세, 그리고 종이 위에서 어떻게 그려나갈 것인지 판단할 겨를조차 없이 미친듯이 그려나가게 되더군요.  복잡한 생각따윈 다 내려놓고 빠르게 처리해야할 것들이 갑자기 쏟아져 들어오는 다급한 기분이었습니다. 컨베이어벨트가 멈추지 않도록 서둘러서 일을 처리해야하는 것과같은 긴장감이랄까요.

그야말로 본능적으로 재료를 선택하고, 그 상황에서 느껴지는 것들을 그려나가다보니 정말 묘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 동안 붙잡고 늘어졌던 해부학이니 어쩌니 했던 것들을 송두리채 날려버리고 그냥 화구를 들고 종이를 긁어대고 문질러대기 바빴습니다. 마치 어린아이가 흙장난 하듯 그 행위 자체에서 느껴지는 카타르시스가 대단했습니다.

주어진 시간은 짧고 그 안에 아주 원초적으로 표현해야하는 그 긴장감이 즐거웠습니다. 평소에는 해보지도 않았던, 쓰지도 않았던 재료들까지 다 끄집어 냈습니다. 미친듯이 정신없이 파스텔, 콘테, 연필, 붓을 긁어대고 나니 3시간이 훌쩍 지나갔습니다.

선택

수고 해주셨던 모델 분에게 그림을 보여줘야할 순간이 다가왔습니다. 벼라별 생각이 다 들더군요. ‘실망하면 어쩌나’, ‘단 하나라도 맘에 안드는게 있으면 어쩌나’ 안절부절 불안한 마음도 들었습니다. 처음에는 3장을 골라가시기로 했는데 – 모델비 대신 작품으로 지불하기로 합의된 상태였습니다 – 5장이나 고르시더군요! 좀 아깝긴 하지만, 모델 분의 포즈에서 제가 평소에 표현하고 싶었던 감정들이 느껴져서 즐겁게 작업할 수 있었기에 오히려 기쁘게 드릴 수 있었습니다.

제 손에서 잠자고 있는 것보다는 그래도 잘 간직해주시는 편이 더 기쁠 것 같습니다.

여튼 전날 밤에 긴장감에 잠을 설쳐서 4시간 자고 – 제가 이렇게 소심한 인간입니다 –  그림을 그리고 나니 진이 빠지고 머리가 다 핑 돌고 어지러웠습니다. 그래도 뭔가 뿌듯하고 감동적이었어요. 이렇게 온전히 모든걸 다 잊고 그리는 행위 그 자체에 몰두 해본게 얼마나 오랜만인지, 그림을 그리는게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 다시 한 번 느끼게 됐던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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