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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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에 블리치가 올라왔더군요. 블리치는 쿠보 타이토의 만화 원작으로 우연한 계기로 사신의 역할을 대행하게 된 쿠로사기 이치고가 호로라고 불리는 괴이한 영혼들을 상대로 싸운다는것이 주된 내용입니다.

뭐 각설하고 일단 일본은 만화왕국답게 끊임없이 만화를 기반으로 영화 실사화에 끊임없이 도전하는 상황입니다. 어릴적 추억을 떠올려볼법한 작품들이 나왔기에 반가워서 손댔다가, ‘이럴거면 왜 영화로 만들었냐’고 투덜대게 만드는 경우가 참 많았죠.

결론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이 영화도 영 아니올시다이긴 합니다(…) 하나같이 아이돌이나 신인급 배우들만 드글대는 이유인지 몰라도 기본적으로 연기를 잘하는 중년 배우층이 정말 희박합니다. 에구치 요스케는 그렇다 쳐도 나가사와 마사미가 엄마 역할로 나온다는게 참 세월을 느끼게 하는 대목입니다 ㅎㅎ

장르가 장르인 탓인지 몰라도 유난히 블리치를 보면서 느끼는건, 배우들이 하나같이 눈깔 사납게 뜨는 연습만 한건가 싶을정도로 표정 변화가 참 제한적입니다. 인간의 희노애락중에 노怒만 존재하나 싶을 정도. 악평만 늘어놓긴했습니다만, 그래도 칭찬해주고 싶은 부분들을 보자면, CG가 옛날에 비해서는 그래도 잘 어우러지는거 같습니다.

그랜드피셔라는 보스급 악역캐릭터가 나올때 눈에 보이지 않는 악령이 물질세계에 끼치는 영향을 자연재해로 표현했다는 점이 나름 설득력 있게 다가왔고, 검술 액션이 박진감 넘치게 그려졌습니다.

그것 이외에는 이런류의 장르가 품고 있는 특징이자, 동시에 앞으로 더 나아갈 수 없는 한계라고 보이는 – 끝없는 독백과 더불어 따뜻한 인간성을 나약함으로 그려내고 있는 – 부정적인 표현이 여전히 작용한다는 점이 좀 아쉬웠습니다.

쿠치키 바쿠야의 일전이 주인공은 절대 패배할 수 없다는 1960년대 후반에 나온 내일의 죠의 스토리 패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 또한 지루함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주인공에 비해 압도적인 힘을 가진 자와의 일전은 이런식으로 지리멸렬하게 전개될 필요가 없습니다. 좀더 깔끔하게 압도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면 차기작에서 좀 더 극적인 변화를 보여주겠거니 싶을텐데, 이대로는 차기작은 안만들겠다고 선언하는것처럼 보여서 그냥 다 내려놨구나 싶을 정도.

아무튼… 킬링타임용으로도 좀 아쉬운 점이 많은영화. 하지만 그냥 블리치를 너무 좋아하는 팬이라면 그냥 팬심으로 눈 딱감고 볼 수도 있을것 같네요. 물론 저는 호기심으로 시작해 오기로 끝낸걸 후회하고 있습니다. 그냥 오기 부리지말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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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오래전 ‘스펀지’라는 방송 프로그램에서 실험을 한 적이 있다. 피험자가 잔뜩 배가 부르도록 먹고 난 이후에도 좋아하는 음식을 보면 위가 스스로 운동을 해서 음식이 더 들어갈 공간을 만드는 장면을 목격할 수 있었던 실험이었는데, 그때만해도 단순히 먹고자하는 의지가 장기에도 영향을 준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좀 더 구체적으로 이런 호르몬 영향으로 포만감을 느끼지 못하도록 교란현상이 일어난다는걸 알고나니 음식을 먹을때 단순히 식욕에 흔들리지 않도록 의식적인 식사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최근에는 음식을 먹고 난 이후에 소화를 하기 위해서 꽤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는걸 느낀다. 대체로 위장이 운동을 시작하면 뇌로 가야할 혈액도 위장 운동에 투입되기 때문에 졸음이 쏟아지는 현상이 일어난다고 알고 있는데, 요즘은 밥만 먹고나면 그렇게 졸리울 수가 없다.

주체하지 못할 정도로 쏟아지는 잠때문에 식후에 활동에 큰 제약이 생긴다. 배부를 때까지 먹기보다는 적당히 어느정도 선을 정하고 그 정해진 양만 섭취하고 배가 고프지 않아도 식사를 중단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고 있다.

그 이후에 차라리 견과류 같은 것으로 보충하는 간식 시간을 갖더라도 일단 포만감에 의존하는 식사 습관을 통제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체중이 늘면서 관절에도 무리가 가고, 일을 하는데에도 많은 체력적 한계가 느껴진다.

단순히 나이가 먹어가면서 일어나는 현상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식사량 통제를 통해서 어느정도 활동에 필요한 에너지를 분배할 수 있을것 같다. 어차피 영양이 부족한 상태는 아니니, 몸을 좀 더 전략적으로 운영해야할 것 같다.

참 이렇게까지 하고 살아야하나 싶을때도 있지만, 어차피 주어진 자원을 최대한 활용해야하는 방향으로 살아가야한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으니, 별 수 있나. 어떻게든 발버둥 쳐보는 수 밖에 없다.

알폰스 무하

아르누보 스타일의 대가

알폰스 무하는 제가 무척 좋아하는 예술가입니다. 저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았고, 그에게 영감을 받은 많은 작가들이 나와 그의 작품에 여전히 생명력을 부여하고 있습니다. 보통 알폰스 무하라고 하면 아르누보 양식의 대가이자 아름다운 여인을 그려낸 사람 정도로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실제로 알폰스 무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들이 대체로 그러한 것들이 많았습니다만, “알폰스 무하와 사라 베르나르”에서는 조금 더 알폰스 무하의 작품과 더불어 개인적인 전기에 대해 집중적으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타고난 예술가는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고갱과 고흐라는 걸출한 인물들과 동시대를 살았던 무하는 타고난 예술가가 아니라, 끊임없이 구애한 끝에 경지에 다다랐다는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처음 프라하의 예술학교에 지원했을때만해도 그는 재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입학을 거절당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리기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한때 귀족의 후원을 받으며 아카데미를 다니며 작업을 이어가던 호시절도 있었지만, 급변하는 시대는 그를 가만두지 않았습니다.

아르누보의 별 그리고 전설이 된 배우 – 사라 베르나르

우여곡절끝에 파리에 다다른 무하는 굶주림과 추위에 떨며 고난을 겪지만, 운명처럼 다가온 사라 베르나르의 공연 포스터 ‘지스몽다’의 석판화를 맡으며 새로운 삶을 얻게 됩니다. 사라 베르나르라는 인물은 무명의 무하에게 기회를 안겨준 동시에 무하의 그림을 통해 흡사 여신과 같은 이미지를 얻게 되었고, 무하는 사라 베르나르를 그림으로써 전성기를 구가하게 됩니다.

자기 민족에 대한 사랑 – 슬라브 서사시

그저 이야기가 여기까지였다면, 이 책은 단순히 무하의 인생 성공담에 그치는 수준이었겠지만, 본격적으로 흥미로운 부분은 그 이후였습니다. 무하는 유년시절 종교적인 영향과 맞물려 슬라브 민족이라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서 항상 부채의식을 갖고 있었기에 슬라브 서사시를 통해 그것을 떨쳐내고자 합니다. 슬라브 민족과 종교, 그리고 체코의 굵직한 역사를 다루는 20점이나 되는 대작을 그려내기 위해서는 오랜 세월 떠나있던 고향과 자신의 민족에 대해서 탐구하고 그려내야했기에 쉽지도 않고, 시간과 금전적인 면에서도 큰 부담이 따랐습니다.

미국의 기업가 찰스 리차드 크레인을 만남으로써 그의 꿈은 실현될 수 있었고, 이 만남은 예기치 않게 체코 슬로바키아의 독립과도 맞물리는 극적인 이야기를 낳습니다. 단순히 그는 다재다능한 예술가를 넘어 자신의 민족을 사랑하는 사람이었고, 자신이 가진 것을 아낌없이 나누며 삶을 즐기는 보헤미안이었습니다. 살아 생전 그의 작품은 수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화제거리가 되었지만, 그의 말년에 남긴 슬라브 서사시를 비롯한 많은 작품들은 민족의 정신을 고취시키며 체코의 독립을 향한 열망을 불태웠습니다.

인간에 대한 사랑

“알폰스 무하와 사라 베르나르”를 통해 둘러본 무하의 삶을 알고난 후 다시 찬찬히 무하의 작품들을 살펴보게 되었습니다. 무하의 작품은 아름다운 여인을 담았으나 그것이 천박하거나 외설로 비취지 않는 이유는 그의 작품 속 여인들을 통해 민족에 대한 사랑과 더 나아가 그가 품고 있는 인류애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라는 걸 느꼈습니다.

무하의 삶을 알기 전까지는 그의 작품을 보며 단순히 화려하고 아름다운 양식에 도취되어, 그가 품고 있던 인간 그 자체에 대한 사랑을 미처 느끼지 못했던 겁니다. 후반부에 슬라브 서사시를 소개하며 체코, 슬로바키아와 슬라브 민족의 역사에 대해 다루는 부분은 생소하여 읽기가 수월하지 않았습니다만, 전반적으로 술술 읽히다보니 책을 사자마자 단숨에 다 읽었습니다. 알폰스 무하의 작품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일독을 적극 권하고 싶은 책입니다.

기획이 뭔지 궁금해서 사보았습니다

사실 기획이라는 건 늘 필요한 요소입니다. 일을 하면서 항상 뭔가 빠진 것 같이 느껴지는 부분. 그게 늘 기획의 부재였습니다.  제가 일하는 환경은 늘 그랬습니다. 누군가는 기획을 담당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누구도 기획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모두들 어디서 본듯 하거나, ‘누가 이렇게 하더라’ – 이런 식으로 흉내내기 식으로 일을 해왔습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기획자라는 인력을 고용하는 것은 영세업체에서 무척 사치스러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이 2~3명 몫을 하고 있음에도 늘 닥달하는 곳들이 많은 현실을 생각하면, 더더욱 기획자는 꿈도 꾸어보지 못할 존재입니다.

그렇다고 기획자가 있다고 그 일이 또 제대로 돌아가는 것도 아닙니다. 기획자의 역량에 따라서 일의 성사는 무척이나 판이하게 달라질 뿐 아니라, 기획자와 다른 인력간의 호흡이 무엇보다 중요하기에 기획자가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를 갖고 있어도 실현이 안되면 소용이 없기 때문이죠.

결국 내가 기획을 공부해봐야겠습니다

기획을 공부하겠다는 이야기는 기획자가 되겠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기획자가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알고 싶었다고 표현해야 맞는 것 같습니다. 어떤 전문분야든지 학습하고 연구하고 경험하는 기간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그들만큼 잘할거란 기대보단, 그들이 생각하는 방식을 이해하면 조금은 협업이 쉬워질 것 같다는 생각에 입문서라도 읽어보자는 생각에서 뒤져보게 되었죠.

사실 입문서라고 하는 것들은 쉽게 찾기가 어렵습니다. ‘이것이 입문서다’ 라고 친절하게 밝히는 책들이 흔치 않기 때문이죠. 그렇게 목마르게 서점을 뒤지다가 눈에 들어온게 이 책이었습니다. 기획의 정석. 예전에 보았던 웹 기획에 관한 책들은 지나치게 관념적인 부분에서 많은 내용을 다루고 있어서 학문 수준으로 연구하는 이가 아닌 이상 실무에서 어떻게 적용되는지 쉽게 이해하기가 어려운 부분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기획의 정석은 회사에서 일어날 법한 일부터 일상의 소소한 부분까지 두루 다양한 예시를 통해 기획을 쉽게 풀어가고 있습니다. 이런 부분이 저에게는 무척 흥미를 유발하는 부분이었던 것 같습니다. 마냥 소비자 심리가 어쩌고 뇌 과학 이론상 어쩌고, 소비자 행동 패턴 분석이 어쩌고 이런 지식의 나열이라면 아예 펴볼 생각도 안 했을 것 같습니다.

그만큼 친절하게 기획에 입문하거나, 당장 사소한 포스터, 전단지라도 급하게 만들어야할 상황에 요긴하게 써먹을만한 발상법들을 소개해주고 있습니다. 이런 면에서 이 책은 꼭 기획 전문가가 될 생각이 아니더라도, 직접 서비스와 제품을 알리는 사람들이라면 참고할만한 내용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아쉬움도 있습니다

독자 타겟을 어떻게 정했는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책의 서문은 하나님에 대한 감사로 시작합니다. 저는 이런 유형의 감사들을 무척 혐오합니다. 골 넣었다고 기도하고, 상 탔다고 기도하는 사람들 한심하게 봅니다. 하나님께서 겨우 골 넣고 상 타는데 능력을 더했을까요? 이런 행위들은 참 격을 떨어뜨리는 행동들입니다. 원시적인 기복신앙에서 비롯된 행위입니다. 댓가를 기대하고 그 댓가에 값을 치루는 수준입니다. 믿음의 댓가로 나는 상장과 골, 혹은 직업을 얻었다? 어차피 빛이 바라고 썩어 없어질 육신의 것들입니다.  영원에 존재하는 신이 썩어 없어질 것에 가치를 둘까요? 그리고 무엇보다 이 책은 종교서적이 아닙니다. 특정 종교인을 대상으로 쓰인 책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강제로 타인에게 종교를 강요하는 셈입니다. 종교 서적이 아님에도 일부 종교성을 띄었고, 갖고 있는 종교적 관점도 편협하고 수준 이하입니다. 스스로의 단점을 서문에서 드러내고 있어서 참 안타깝습니다.

둘째로 이런 내용은 기획 전문가들이 보는 책이 아니라 저 같은 입문자들에게 쥐어지는 책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획을 비롯한 해당 분야의 사전지식 없이 보기에는 업계 용어 혹은 영어가 남용되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단어야 사전을 뒤져보면 되지만, 해당 단어가 사전적 의미보단, 업계에서 통용되는 의미가 어떠한지 개념적인 부분에서 약간 전달이 희미한 부분들이 있습니다.  대략 그냥 그렇구나 수준으로 넘어가며 읽기에는 무리가 없지만, 그 의미들이 뿌리박고 내려서 확실히 이해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이 부분은 제가 사전지식이 부족해서 그럴 수도 있는 부분이니 개인차가 존재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추천할 만합니다

일단 책을 전반적으로 관통하는 취지가 무척 좋습니다. 일부 아쉬움은 있지만, 그 아쉬움 때문에 버리기에는 훌륭한 접근법을 아낌없이 공개해주고 있습니다. 저에게는 일종의 발상의 전환이 되어주는 내용들이 있어서 저자에게 무척 고마움을 느꼈습니다. 아직 구매하지는 않았지만, 저자의 기획의 정석 실전편도 곧 입수해서 읽어볼 생각입니다. 개념적인 부분을 어떻게 실무에 연결할지 무척 기대되기 때문입니다.

앞으로도 저자는 활동을 응원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강사로서 대중에게 나설 때 종교적인 내용을 주입하는 잘못만큼은 범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실전편에도 서문에서 종교성을 띈 이야기가 나온다면 무척 실망할 것 같네요…

최근 홍순성 홍스랩 대표의 강연을 들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이미 서점에서 홍순성 대표의 책을 확인했었지만, 그냥 그저 그런 수 많은 자기계발서 중 하나로 생각하고 그냥 기억만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강연을 듣고나니 좀 호기심이 생기더군요.

그래서 서점에서 책을 구매해서 읽어보게 됐습니다.

일단 가볍게 흝어보고 나중에 다시 읽어봐야지 싶었는데, 읽다보니 참고할만한 내용들이 좀 있었습니다. 그래서 메모를 하면서 읽기 시작했습니다. 뭔가 제 입장에서는 참고할만한 이야기가 많았기 때문이죠.

먼저 1인 기업가라는 말은 프리랜서라는 말과 어느정도 유사한 성격을 띄고 있습니다. 그래서 책을 보기 전까지는 해당용어를 프리랜서를 포장하는 의미정도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프리랜서는 외주에 의존하는 성격이 강하고, 1인 기업가는 남들과 차별화된 서비스를 미리 준비하는 성격이 강합니다.

비슷한 듯 하지만 엄연한 차이가 있습니다. 외주 작업자는 대체가 가능하지만, 1인 기업가는 대체 불가능한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차별화를 이룹니다. 이 부분부터 이 책은 프리랜서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점차 읽어 내려가면서 구체적으로 설명되고 있는 내용들은 결국 독자 자신에게 적용할 방법들을 고민하게 만듭니다. 홍순성 저자가 밝히는 1인 기업가로서의 생존기는 전문성을 통해 차별화를 이룰 것을 재차 반복하고 강조합니다. 다만 책의 일부에서 지나치게 같은 내용이 근접한 거리에서 반복되는 경향이 있다는 느낌입니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읽을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어서 추천하고 싶습니다.

사실 경험이 부족한 이들에게 구체적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방향을 제시해주는 것만 해도 소득입니다. 여담으로 무언가 배우러 다닐 때마다 항상 가르치는 사람들이 던지는 멘트가 있음을 깨달았는데, 바로 이것입니다 “혹시 뭐 질문 있어요?”

이 질문은 저도 누군가에게 종종 던졌던 질문인데, 막상 당해보니(?) 이 질문에 큰 문제가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해당 분야에 기본적인 지식이 없는 이들은 질문 자체가 불가능 하다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질문도 아는 게 있어야 호기심과 궁금증이 발생합니다. 이 책은 바로 그런 부분을 해소해주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직장인, 혹은 프리랜서가 1인 기업가로 변모하기 위해 알아두고 준비해야 될 것, 그리고 무언가 막힘이 있을때 무엇을 물어봐야할지 기본적인 토대를 이야기 해주는 내용인 셈인거죠.

그동안 프리랜서로 일을 하기도, 수 없이 다시 직장을 찾아 돌아가기도 했지만 근본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개선해야 할지 몰랐던 부분들에 대해서 힌트를 얻은 느낌이었습니다.